핵심 요약
- 지난달 요양원 입소 부담 때문에 어머니를 살해한 부자(父子)의 유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 본인부담률은 재가 15%·시설 20%지만, 시설은 기본 단가 자체가 훨씬 높아 실부담액 격차는 훨씬 크다.
- 그래서 가정은 집으로 기운다. 그런데 집의 가격표에는 안 찍히는 비용이 따로 쌓인다. 돌보는 가족의 사라진 소득이다.
지난달 한 가정의 유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가족 요양 비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입니다.
뇌출혈과 고관절 골절로 거동이 어려운 아내이자 어머니를, 남편과 아들이 공모해 살해했습니다. 동기는 요양원 입소와 생활비 부담이었습니다. (한국경제, 2026-05-20)
피해자가 살해를 승낙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형은 아들 7년, 남편 3년이 확정됐죠.
이 가정 앞에는 두 길이 있었습니다. 시설로 보내는 길과 집에서 모시는 길. 그 두 길의 가격표부터 들여다봅니다.
비어 있는 칸 — 가족 요양 비용 가격표의 한쪽
장기요양 등급을 받으면 대부분 급여 혜택이 적용됩니다. 본인부담률은 재가 15%, 시설 20%죠. (보건복지부·생활법령정보)
비율만 보면 5%포인트 차이로 보입니다. 그런데 시설급여는 기본 단가 자체가 재가보다 훨씬 높습니다. 식비·간식비 같은 비급여도 따로 붙죠. 한 달 실부담액의 격차는 사실 훨씬 큽니다.
그래서 "집에서 모시는 게 싸다"는 말이 자연스러운 통념이 됐습니다. 위 사건의 가정도 시설 비용을 감당하기 버거워했죠.
그런데 이 가격표엔 칸 하나가 비어 있습니다.
그림자 노동 — 셀프 계산대에서 일하는 사람
가격표에서 빠진 항목은 돌보는 사람의 노동입니다.
마트 셀프 계산대를 떠올려 보죠. 손님이 직접 바코드를 찍고 봉투에 담습니다. 분명히 일을 했는데, 그 대가는 영수증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족 요양도 똑같습니다. 거동 못 하는 어머니를 씻기고 먹이고 약을 챙기는 시간은 청구서에 0원으로 잡힙니다.
일은 분명히 했는데 가격표엔 안 적힌다. 이게 그림자 노동 (Shadow Work).
사회학자 이반 일리치가 붙인 이름입니다. 사랑이나 의무의 이름으로 무급으로 수행되지만, 사실은 거대한 경제적 가치를 태워 없애는 노동이죠.
안 받은 월급 — 기회비용의 진짜 자리
그림자 노동의 청구서는 엉뚱한 곳에서 날아옵니다. 돌보는 사람의 월급봉투죠.
회사원이 부모님 병원 예약 시간에 맞추려고 오후 회의를 빠집니다. 야근도 못 합니다. 한두 번이면 사정이지만, 매주 두세 번이 일 년이 되면 평가가 깎이고 승진은 다음 사람에게 갑니다.
이때 잃은 돈은 통장에서 빠져나간 게 아닙니다. 통장에 들어왔어야 할 돈이 안 들어온 거죠. 바로 안 받은 월급.
재가의 낮은 본인부담률은 표면 가격표일 뿐입니다. 그 가격표를 택하느라 4050 세대가 일을 줄이거나 놓으면, 한창 벌어야 할 시기의 안 받은 월급이 누적됩니다. 그 누적이 부모와 자녀의 통장을 동시에 비웁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시선에서는 이게 서류로도 보입니다. 일당 간병비 청구서를 가장 자주 밀어 넣는 건 40~50대 자녀들이고, 그 여백엔 피로가 묻어 있죠.
| 구분 | 재가요양(집) | 시설요양 |
|---|---|---|
| 본인부담률 | 15% | 20% |
| 가격표에 찍히는 비용 | 낮음 | 높음 |
| 가격표에 안 찍히는 비용 | 돌보는 사람의 소득 | 없음 |
다시 그 가정으로 돌아가 봅니다.
남편과 아들이 시설 비용을 견디지 못해 어머니의 목을 졸랐습니다. 만약 그들이 집에서 모시는 쪽을 택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그 길 위에서도 누군가는 일을 줄이고, 통장이 비고, 가족이 천천히 가난해졌을 겁니다.
다른 방식, 같은 자리. 시설로 가든 집으로 가든, 결국 가족 요양 비용은 누군가의 청구서나 누군가의 사라진 월급으로 돌아옵니다.
요즘은 장기요양 등급을 보장해주는 보험 상품이 늘었습니다. 재가든 시설이든 한 달 부담액의 일부를 외부에서 메워주는 장치죠. 이런 비극이 닥치기 전에 한쪽을 미리 받쳐둘 수 있다면, 어디서 모시게 되든 금액적 부담은 좀 덜어질 수 있을 겁니다.